조선왕릉

조선왕릉탐방- 태강릉

여객전무 2009. 8. 5. 10:12

[조선왕릉의 비밀 ⑥ - 태강릉]
2009-08-03 오후 05:54




                     사적 제 201 호 |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223-19번지

           

태강릉 가능길 :
중부고속도로 동서울IC→서하남IC→강일IC→ 남양주IC→ 구리IC→ 서울방면 진입후 태릉이정표 방향으로 삼육대학교·태릉선수촌→500m전방 우측에 있음


                                          
                                            
< 태릉 | 泰陵 >


<중종 제2계비 문정왕후가 묻힌 태릉. ‘조선의 측천무후’ ‘철의 왕비’라는 세간의 평을 반영하듯 왕비의 단릉임에도 웅장하게 조영되었다.>

조선 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65) 윤씨의 능이다. 문정왕후는 중종과의 사이에 명종을 비롯해 1남 4녀를 두었다. 명종이 12세에 왕위에 오르자 8년간 수렴청정을 한 문정왕후는 동생 윤원형을 내세워 을사사화, 양재역 벽서사건 등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을 처벌했다. 또 당대의 고승 보우(普雨)를 앞세워 불교 부흥을 도모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참도가 이어지고 정자각 뒤쪽 언덕으로 봉분이 엿보인다. 정자각은 한국전쟁 때 파손되어 석축과 초석만 남아 있던 것을 1994년 복원하였다.>
 
 왕후는 생전에 지금의 서삼릉에 있던 중종의 능인 정릉(靖陵)을 보우가 주지로 있던 봉은사 곁으로 천장하고 자신도 그 곁에 묻히고자 했으나 정릉의 지대가 낮아 장마철에 물이 들어차는 바람에 중종의 곁에 묻히고자 했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명종은 모후의 시호를 문정으로 하고, 능호를 신정릉(新靖陵)이라 했다가 태릉으로 고쳤다.



                                             
< 강릉 | 康陵 >

 
 <명종과 인순왕후의 쌍릉으로, 열두 면의 병풍석과 열두 칸의 난간석을 둘렀는데, 난간석을 터서 두 봉분을 서로 연결하고 있다.>

조선 13대 명종(明宗, 1534~67)과 인순왕후(仁順王后, 1532~75) 심씨의 능으로, 어머니 문정왕후릉(태릉)에서 1km 떨어진 동쪽 산줄기에 안장되어 있다.


<문·무석인, 망주석 등의 석물은 이웃한 중종왕비(문정왕후) 태릉과 비슷하다. 명종은 재위 기간 내내라 할 정도로 오랫동안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명종은 중종의 둘째 아들로 1545년 인종이 승하하자 12세 나이로 왕위에 올라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인순왕후가 낳은 순회세자가 죽은 지 2년 만에 의지했던 어머니 문정왕후마저 숨지자 명종은 마음의 병을 얻었다. 선정을 베풀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명종은 보령 34세로 승하했다.

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한 후 인순왕후는 덕흥대원군(중종의 일곱째 아들)의 셋째 아들을 왕위로 올렸다. 그가 14대 선조다. 선조의 나이가 어려 인순왕후는 1568년까지 수렴청정을 하였다. 인순왕후가 승하한 뒤 명종릉 옆에 쌍릉으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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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문화에서 발간한 [조선 왕릉 답사 수첩]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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