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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기자의 바깥 [26] 연극배우 택배기사 임학순

여객전무 2009. 12. 17. 15:30

[최윤필 기자의 바깥] <26> 연극배우 택배 기사 임학순

다시 무대에 서는 꿈… 그 자신의 택배는 언제쯤 올까
연극 '라이어 라이어' 주연 등 '조명 맛' 들인지 15년
그나마 개런티 싼 주연에 밀려 올 초부터 택배 기사로
아내·두 딸 짊어진 '重肩' 연극인… 무대 다시 돌아가야죠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그의 사연을 들은 건 서너 달 전이었다. 공연을 준비하던 한 연극 연출가가 주연 적임자로 점찍어둔 배우에게 연락했더니 "연극 그만두고 택배 일 시작했다"더라는 거였다. 사연을 전한 이는 연극판 사람들의 '딱한' 사연들을 정말 딱하게 여겨지도록 곡진히 이야기했는데, 나는 이야기의 진의는 아랑곳않고 택배 일을 얕잡는 듯한 뉘앙스를 트집잡아 '생계를 위한 노동보다 예술이 더 값지다는 거냐' '예술하는 사람들의 밥은 누군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거냐' 따위의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어깃장을 놓았던 것 같다. 예술 합네 하면서 저 끌리는 일에만 매달리는 순정에 대한 반발심에다 모종의 열등감까지 버무려 까탈을 부린 거였다.

불현듯 그가 떠오른 건 지난 회 '바깥'의 노(老)혁명가 이일재씨를 만난 뒤였다. 꼬집어 말하자면 이씨의 한 마디, '不顧家事(불고가사)'란 말이 손바닥의 잔가시처럼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신념이나 열정에 등돌리는 이들 중에는 보란 듯 자신의 옛 자리에 침을 뱉음으로써 새로운 의지와 입지를 굳히려는 이들이 있다. 반면에 애써 잊고자 머물던 자리로 눈길조차 돌리지 않으려거나, 늘 동경하며 가난한 집 문풍지처럼 흔들리는 이들도 있다. 그는 어느 쪽인지 궁금했고, 전자라면 변신의 명분을, 후자라면 스산한 소회를 엿듣고 싶었다. 요컨대 불고가사를 거부했거나, 못한 이의 변명이 내겐 필요했다.

임학순(37)씨. 모 대학 중퇴. 모 대학 연극과 93학번 재입학. 1996년 '요한, 지옥에 가다'(안장훈 연출)로 데뷔. 2000~2005년 극단 연우 전속 배우. 연극 30여 편 1,000여 회 공연. '장군 슈퍼' '춘천 거기' '라이어, 라이어' 등 주연. 아내(35)와 여덟 살, 여섯 살 두 딸을 둔 가장. 현 택배 기사.

약속 장소에 30분가량 늦게 나타난 그는 "일이 늦어졌다"며 미안해했는데, 더 미안한 질문들을 해야 할 입장이었던 나는 그의 사과에 더 미안해져 "커피 들고 오겠다"며 자리를 떠야 했다. 뭐가 됐건 구경꾼으로서, 어떤 이의 '먹고 사는 일'의 대차대조표를 들춰보자고 덤비는 일은 염치없고 무례한 짓이다. 그도 자신의 말에 스스로 무참해지곤 했을 것이다. 하지만 표정은, 재미없는 희곡 대본을 읊조리듯, 내내 대체로 덤덤했다.

_ 택배 일은 언제부터.

"올 2월부터. 중고로 1톤 탑차 한 대 사서 '지입'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_ 지입이라면.

"대한통운 협력사 중에 K종합물류라는 데가 있다. 현재 거기 직원인데, 쉽게 말해 대한통운 일을 우리 회사가 하청받아서 직원들에게 분배하는 식이다."

_ 그럼 월급제인가.

"월급은 없고 택배 건당 800원 꼴로 번다. 각자 담당 지역이 있는데 물량이 많은 곳은 일이 많은 대신 수입이 좀 낫고, 일거리가 적으면 적게 가져가고… 그런 식이다."

_ 연료비는.

"기름값과 보험료, 밥값 등등은 각자 부담해야 한다."

_ 하루 일과는.

"오전 6시, 늦어도 6시 30분까진 출근해야 한다. 9월부터 연말까지 성수긴데 요즘이 바쁜 철이다. 물품 받아서 각자 동선(動線) 감안해서 차에 옮겨 싣는 작업을 '까대기'라고 하는데, 까대기 끝나면 흩어져서 일하는 시스템이다. 아침에 받은 물량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날 소화해야 한다. 퇴근은 대충 저녁 8시 전후에 하고, 늦어지면 10시를 넘기기도 한다."

주소지에 수령인이 없을 때, 물건을 못 받았다거나 파손됐다고 하는 경우엔 전적으로 택배 기사가 책임져야 한다. 물건값을 물어내야 하는 일도 드물지만 있다. 낯선 일이라 힘들겠다고 하자 그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있다"고 말했다.

추웠지만 우리는 커피숍 옥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도, 나도 담배가 필요했다. 그는 최대한 심상하게 말하려는 눈치였고, 나도 대수롭잖은 척 들었다. 우리에겐 니코틴보다 어둠이 더 필요했는지 모른다.

대학 토목과를 다니다 1년 만에 자퇴하고 다시 공부해 연극과로 진학한 일, 군대 마치고 이 극단 저 극단 기웃거리던 조ㆍ단역 시절 이야기, 연극판 사람들 이야기, 점차 연극 맛_연극계에서는 그 걸 '조명 맛'이라 한다 했다_에 중독돼 가던 나날들, 그리고 극단 연우 시절 이야기.

"아내도 연우에서 만났어요. 처음엔 그냥 열심히 연기하는 보기 좋은 동료였죠. 어쩌다 연애를 하게 됐고, 얼마 뒤부턴 헤어져 집에 가기 싫어지데요. 그러던 어느 날 공연 마치고 대학로 실비집에서 비지찌개 시켜놓고 소주 한 잔 하면서 대뜸 청혼을 했는데 냉큼 좋대요. 연애 6개월 정도 하고 2001년 11월에 결혼했습니다."

개런티도 변변치 않았을 때다. "대신에 겁없이 자신만만하던 때였죠. 또 연극하는 사람들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원래 뇌 구조가 그런 거 치밀하게 생각 못하게 생겨먹었나 봐요. 왜 애들은 날 때 지 밥그릇은 챙겨 나온다고들 하잖아요. 정말 그런 줄 알았어요."

공연을 하면 대개 연습하는 데 한두 달, 공연하는 데 한 달씩 걸린다. 그렇게 묶어 두세 달 동안 연극 한 편에 매달려 당시 받던 개런티가 20만~30만원. 그나마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 달씩 밀리기 예사고, 아예 못 받는 경우도 있다. 그가 연극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건 2004년 무렵부터라고 했다. 그 해에 첫 애가 태어났고, 이듬해 둘째를 가진다. 연극을 그만둔 상태였던 아내가 둘째 임신 소식을 알리던 자리. 그는 별 생각 없이, 아니 아내도 원하리라고 생각한 바대로 '우리 낳지 말자'고 한다. 그런데 평소 그에게 존칭을 쓰던 아내가 갑자기 펑펑 울면서 그러더란다. '야, 너 그렇게 자신이 없냐?' 그는 "그 말 듣는 순간 마음 한 구석이 풀썩 무너지면서 동시에 다른 한 쪽이 불쑥 솟아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제가 기억하는 아내의 '명 대사' 중 하나예요."

그렇게 '쎈' 척하던 아내지만, 역시 마음은 그게 아니었던지 얼마 뒤부터 이따금 고민을 털어놓더라고 한다. "제 사정, 연극판 사정 뻔히 아는 사람이니 그 전에는 정말 아무 말 없었거든요. 가만히 들어보면 그 사람 말이 다 옳아요. 저도 차츰 돈 되는 연극을 찾게 되더군요. 흥행이 될 만한 공연, 장기 공연, 개런티가 보장되는 공연들이 있거든요." 주연급인 그가 그간 '돈 되는 공연'에 출연해 받은 최고 개런티는 월 200만원이었다고 했다. "2004년 즈음부터 올 초까지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공연했어요. 낮에는 어린이연극 공연하고 밤에는 제 공연 하고, 틈틈이 다음 공연 연습하고…."

그러다 올 초, 6개월 뒤 재계약 조건으로 1년 계약을 하고 시작한 작품의 첫 반기 마지막 공연이 끝나던 날 그는 일방적으로 해약 통보를 받는다. "저보다 싸게 주연을 맡을 사람이 있었나 봐요. 제겐 아무런 상의도 없이 그 배우에게 연습을 시켰더군요. 알던 사람한테 뒤통수를 맞은 거죠." 그런 일도 없지는 않다고 했다. 계약된 개런티를 못 받는 경우도 있고, 제작자가 갑자기 잠적해버리는 경우도 있고, 어쩔 수 없어 그러는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그래도 그는 비교적 잘 풀린 배우에 속한다. 아쉬운 소리 해가며 공연해본 적 없고, 하는 공연마다 '대박'은 아니어도 적자는 안 났고, 작품이 상을 타기도 했고, 적으나마 개런티도 꾸준히 받았기 때문이다.

조ㆍ단역으로 연기 배우던 연우 시절, 주연급 선배에게 "그래도 무대에 나가 있는 시간은 형보다 내가 더 길다"며 당당히 맞섰고, 무대에서 시종 칼 차고 마네킹처럼 서 있으면서도 '내가 주연이다' 생각하며 버텼다는 그다. 그래도 그 일 겪고 나니 환멸이 생기더라고 했다. "쪼들려도 어떤 자부심 같은 게 있었는데… 정말 비정규직이 이런 거구나 싶데요. 배신감도 들고요."그 길로 그는 돈벌이를 찾아 나섰고, 그나마 큰 기술 없이 할 만하겠다 싶던 게 택배 일이었다고 했다.

매일 100개가 넘는 물건을 주소 찾아 다니며 배달하려면 정신이 없지만, 그 짬에도 낯익은 이들의 연극 공연 포스터가 눈에 띄면 싱숭생숭해진다고 했다. 그 사이 그의 아내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중개업소에 취직했다. "지금처럼 둘이 2년 정도 벌면 아내 가게를 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그때는 다시 무대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며칠 전에 어린 딸이 제 엄마한테 그러더래요. '아빠 택배 안 하면 좋겠다'고, '연극배우 하면 좋겠다'고. 그 녀석이 뭘 안다고…"

바보같은 질문이지만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연극이 왜 그리 좋으냐'고. "무대에 있을 때, 관객을 마주하고 설 때, 나라는 인간이 그나마 빛을 발한다는 걸 전 알거든요. 그리고 그런 제 연기를 찾아서 봐주시는 팬들도 많지는 않지만 있거든요."

경력 15년이면 중견(中堅) 배우쯤 되냐고 묻자 그는 "맞다"고 했다. "연극판에 있는 한 선배가 그러데요. 제 어깨에 아내와 딸 둘을 얹고 있으니 '중견(重肩)' 배우라고…." 그가 앉은 택배 트럭의 비좁은 운전석이 중견 배우 임학순씨의 모노드라마 무대였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