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테스트

프레게의 인식론과 수리철학

여객전무 2009. 5. 1. 10:06

 

프레게의 인식론과 수리철학*

1)심 철 호**

【주제분류】인식론, 분석철학

【주 요 어】프레게, 인식론, 수리철학, 논리주의, 분석성

【요 약 문】

프레게의 인식론은 오랫동안 주목의 대상이 아니었다. 인식론적 문제에 대한 프레게의 과묵함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근래에 와서야 조금씩 일기 시작한 프레게의 인식론에 대한 새로운 조명들은 프레게 철학에서 인식론의 비중과 의의 및 프레게의 인식론에 대한 기여도 등의 보다 일반적인 문제들로부터 ‘논리주의의 동기’, ‘분석/종합, 선험/후험 구분’, ‘논리법칙의 조건’, ‘뜻/지시체 구분의 수리철학적 및 인식론적 의의’ 등 수리철학 특유의 인식론적 쟁점들에 대한 해석들을 주요 테마로 한다. 이 글은 이들 쟁점들을 둘러싼 논쟁들을 정리하면서, 프레게의 수리철학적 기획과 성과들에 대한 기존의 언어 철학 중심적 해석에 비해 인식론적 해석이 갖는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현대적으로 윤색된 프레게의 모습을 부분적으로나마 프레게 당시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1.

초기 프레게 학자들이 강하게 부각시킨 언어철학자로서의 프레게의 인상에 비추어 볼 때 프레게의 인식론이란 주제는 다소 생소하다. 그러나 프레게의 논리주의 프로그램이 산수의 참인 명제들에 대한 논리적 환원을 통한 산수 지식의 정당화라는 명백히 인식론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 생소함은 또한 의외라 할 수 있다. 프레게 철학은 주로 분석철학자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그의 작업 가운데 분석철학의 여러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뜻/지시체 구분 이론을 비롯한 언어철학 혹은 의미론 분야의 성과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를 수학기초론에 일생을 바친 수학자로서보다는 언어철학자로서 더 인상 깊게 기억하게 할 정도다. 프레게가 당초에 수학의 참인 명제들의 정당화 문제에 몰두하다가 수학적 명제들을 표현하는 언어의 부적절함 때문에 언어 자체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음은 그 자신의 고백으로 보아 분명한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초기의 프레게 해석가들이 제시한 프레게의 모습에 대해 최근의 일부 프레게 학자들은 상당한 의혹을 제기한다. 예컨대 커리(Gregory Currie)1) 같은 이는 프레게가 도대체 언어철학자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슬루가(Hans Sluga)2), 키처(Phillip Kitcher)3), 위너(Joan Weiner)4), 가브리엘(Gottfried Gabriel)5) 등은 프레게의 인식론적 관심들에 주목하며 칸트주의 또는 신칸트주의의 세례를 많이 받은 새로운 프레게 상을 제안한다.

「개념기호」, 「산수의 기초」(이하 「기초」로 약칭), 「산수의 근본법칙」(이하 「근본법칙」으로 약칭)의 전체 논리주의 계획은 산수의 ‘인식론적’ 토대를 굳건히 하려는 시도라 볼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근본법칙」의 서문에는 이점이 명시되어 있다. 게다가 산수에서의 지식-확장 판단들이 순수 논리적 기초 위에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논리학이 인식 가치가 있다는 주장의 뒷받침에 쓰이고 있다. 「기초」에서 이 입장은 ‘순수 논리학의 불임(不姙) 전설’을 깨는 데 사용된다(「기초」 § 17).

그러나 과연 프레게의 인식론이라고 일컬어 줄만한 내용이 있기나 하는지가 의심스러울 만큼 프레게는 인식론적 주제에 관해서도 비교적 ‘과묵’할 정도로 언급을 자제한 흔적이 역력하다. 프레게 논리주의의 인식론적 성격과 상세한 프레게 인식론의 부재라는 대비 현상이 일견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오래 전부터 최근까지 프레게의 인식론에 대한 무관심이나 저평가로 이어져왔다. 이를테면 프레게가 “철학적 문제에 대한 인식론적 접근을 전적으로 배척했다”6)는 오래 전 기치(Peter Geach)의 주장은, “생애의 대부분을 프레게는 인식론을 그냥 무시함으로써 논리학에 우선성을 부여했다. ... 말년에서야 인식론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 그의 노력들이 인식론자들이 씨름해온 문제의 해결에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7)는 비교적 최근의 케니(Anthony Kenny)의 평가에까지 지속된다.

그렇다면 말년이 되기 전까지는 별다른 인식론적 문제 의식도 없이 논리주의라는 필생의 작업에 매달렸다는 말일까?

이와 관련 가브리엘8)은 19세기에 논리학과 인식론이 분리된 분야가 아니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 그런 구분은 논리학 내부에서 요소론("Elementarlehre")과 방법론("Methodenlehre")의 구분상 친숙해진 것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프레게는 논리학에 심리학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일차적으로 인식론과 논리학간에 선을 긋는 데 관심을 두었으며, 인식론은 어느 정도는 논리학과 심리학 사이의 완충 지대로서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가브리엘의 해명은 어디까지나 소극적인 것일 뿐이다. 어쨌든 프레게에게는 그 자신의 고유한 것은 아니라 해도 무엇인가 인식론적 입장이라는 것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2.

사실 초기부터 프레게는 인식론적 쟁점에 무심하지 않았다. 유명한 「개념기호」의 서문은 “과학적 진리의 인식은 대체로 여러 단계의 확실성을 거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어떻게 주어진 명제에 점차 도달하게 되었는가?”라는 발견의 문맥에 관한 문제와 “어떻게 주어진 그 명제에 마침내 가장 확실한 기초를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정당화의 문맥에 관한 문제를 뚜렷이 구분하고서, 이 가운데 전자는 ‘심리학적 기원’의 문제로서 사람마다 답이 다를 것임만 지적하고 지나쳐 버린다.

반면 후자의 문제에 관해서는 다시금 최선의 증명 방식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당화를 요하는 모든 진리를 ‘순수하게 논리학에 의해서만 증명이 수행되는 진리들’과 ‘경험적 사실들에 의해서 뒷받침되어야 하는 진리들’로 분류한 다음, (보다 믿을만한) 전자의 진리들에 산수가 속하는지를 고찰하기 시작한 것이 프레게의 평생을 건 탐구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에 따르면 자신은 산수에서 추론에 의해서만, 즉 모든 특수한 것들을 초월하는 그러한 사유의 법칙들의 뒷받침만으로 얼마나 멀리 해나갈 수 있을 지에 대해서 먼저 확인해야만 했었다. 그런 가운데 프레게가 인식론의 문제에 직접적 관심을 가졌지만, 수학적 지식에 대한 관심에 국한되어 있다는 뚜렷한 한계를 갖고 있다. 수학을 넘어선 분야에 대한 프레게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수학의 위상 파악을 위한 상대적 비교의 문맥에서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논리학과 의미론 분야에서의 프레게의 기여는 프레게 이후에 그 자체 독립적으로 중요한 주제가 되어왔지만 적어도 프레게에게는 수학의 정당화라는 논리주의 프로그램을 위한 수단 내지 과정이었음을 그 스스로가 분명히 밝히고 있다.

논리주의의 동기에 관해 프레게 자신은 수학적 동기와 철학적 동기를 모두 밝히고 있다. 먼저 수학적 동기에 관한 프레게의 언급을 보자.


나는 무엇보다 수학에 적용할 의도였다. 산수의 개념의 분석 및 그 정리들에 대한 보다 깊은 기초를 제시할 의도였다.(「개념기호」, 서문)


나는 수학에서 시작했다. 내게는 수학에 보다 나은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절박한 요구로 보였다. 내가 보기에 가장 절박한 필요는 이 학문에 보다 나은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었다.(「유고집」, 273/253)


당시의 수학은 어떤 문제가 있었기에 프레게는 수학에 보다 나은 기초를 마련하는 것을 가장 절박한 요구로 보았을까?


이전에 자명한 것으로 지나쳐 온 많은 것들에 대해 이제 증명이 요구되고 있다. ... 함수, 연속, 극한, 무한 등의 개념들이 보다 뚜렷이 정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이 밝혀져 왔다. 음수, 무리수 등과 같이 과학에서 채택된 지 오래인 것들도 그것들의 신뢰성에 대한 보다 세밀한 검사를 받아야 하게 되었다. ... 이런 노선들을 따라가다 보면, 궁극적으로 수 개념에, 그리고 양의 정수에 대해 성립하는 가장 단순한 명제들에 도달하는데, 이런 명제들이 산수 전체의 기초를 형성한다.(「기초」 §§ 1-2)

그러나 여기서 그가 밝힌 수학적 동기는 그리 구체적이지는 않다. 수학의 기본 개념들에 대한 수학자들의 대답이 불만족스러움을 지적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대목에서 수학적으로 잘못된 정의가 문제를 일으키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베나세라프(P. Benacerraf)는 프레게가 산수의 부정합성에 관한 우려를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9) 위너는 수 개념의 정의와 관련하여 산수 자체의 부정합 가능성을 우려할만한 상황이 수학에서 실제로 일어난 적이 있지는 않다고 지적한다.10)

수학적 동기의 불명확성은 자연스레 철학적 동기에로 관심을 모으게 한다.

내가 이런 탐구를 하게 된 데는 철학적인 동기도 있었다. 이 경우 산수의 진리의 본성에 대한 물음, 즉 산수의 진리는 선험적인가 후험적인가, 종합적인가 분석적인가 하는 물음이 대답되어야 한다. 이 개념들 자체는 철학에 속하지만, 내가 믿기로는 수학의 도움이 없이는 어떤 결정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기초」 § 3)


이는 산수의 분석/종합, 선험/후험 여부에 관한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서 산수의 기초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되었다는 말로서, 산수의 분석성을 보이려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인식론적 작업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인식론적 작업에 종사하거나 관심이 있다는 것과 스스로의 인식론적 입장이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서, 프레게가 스스로의 고유한 인식론적 입장을 정립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 프레게 철학에서 인식론의 부재론에 대한 주요 근거였던 것이다.

프레게는 왜 고유한 인식론적 업적을 남기는 데에 무심했을까?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첫째 이유는 그의 반심리주의적 경향이다. 적어도 로크를 좇아서 ‘인간 지식의 기원과 범위 및 확실성’에 대한 탐구를 인식론의 과제라 한다고 할 때 당시에 만연된 지식의 기원에 대한 심리학적 탐구에 대한 그의 거부감은 인식론적 과제의 일부분에 대한 명백한 외면 동기를 부여한다. 프레게의 심리주의 비판의 많은 대목은 심리주의적 고찰이 우리의 수학적 지식의 지위를 개선시키는 데에 아무 관련도 없으며, 회의주의의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심리주의 수론(數論)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수학에서 얻으려 하는 확실성을 침해한다. “가장 엄밀한 학문이 . . . 심리학으로부터 뒷받침을 얻으려 한다면 이상하게 될 것이다.”(「기초」, § 27)

게다가 심리학의 탐구 대상인 표상은 본성상 주관적이어서, 수학적 대상의 본성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 프레게에게서 표상이 주관적이란 말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각자는 그 자신의 의식의 내용으로서 나름대로의 표상을 갖는다. 따라서 수 2가 표상의 일종이라면 그러한 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될 것이다. 즉, 나의 수 2는 어느 누구의 수 2와도 다를 것이다. 둘째, 표상은 표상의 소유자에게 사적(私的)인 것이다. 나의 표상이 남의 표상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비교할 수 없다. “만일 수 2가 일종의 표상이라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의 것일 것이다.”(「기초」, § 27) 프레게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구별에 사용한 것이 바로 이 사밀성(私密性, 

, privacy) 개념이다. 간주관적 비교의 근거가 없으면 주관적이다. 프레게에 따르면 표상은 이런 의미에서 주관적이다. 그러나 명백히 산수는 주관적이지 않다. 간주관적 비교가 가능하며, 산수에 관한 논쟁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 결정할 수 있다.

여기서 또다시 심리주의 비판의 두 가지 인식론적 기초를 볼 수 있다. 첫째, 심리주의가 수락된다면 수학의 진지한 정당화가 불가능하리라는 우려가 심리주의 비판의 명백한 동기다. 수가 표상이라면 각자는 남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나름의 산수 체계를 가질 것이다. 따라서 수학에 대한 어떠한 정당화도 자기에게 알려진 체계의 정당화일 따름이요, 일반적으로 수락가능한 논증이 될 수 없다. 이점이 프레게로 하여금 로크나 버클리처럼 주관적 표상을 지식의 가능한 원천으로 보려는 철학자들과 근본적으로 구분시키는 점이다. 프레게에게 내적 확실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반(反)회의주의 논증은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 똑같은 비중을 가지고, 개인들의 의식의 사적인 특성과 독립적임이 보여져야 효과적이다.

프레게의 논증은 두 번째의 전혀 다른 의미에서 인식론적이다. 이 논증은 표상의 본성에 관한 전제 및 (우리 자신 및 타인의) 주관적 경험에 관한 지식의 본성에 대한 전제에 입각해서만 유효하다. 프레게는 우리가 사실 자신의 내적 경험에 사적으로 접근하며 타자의 경험에는 전혀 접근할 수 없다고 가정한다. 수학에 빗대어 말하자면 우리가 산수의 근본법칙을 알게 되는 방식 또한 사람마다 상이한 심적 과정에 따르는 것인데, “논리학의 탐구에서 그에 관해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유고집」, 157)는 말은 논리학자는 논리법칙을 승인하게 된 ‘신비로운’ 과정의 본성을 탐구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해석된다. 그로서는 그 법칙들을 승인할 수 있고 또 승인하고 있다는 점만으로 충분하다고 본 것 같다.

흔히 알려져 있듯이 프레게의 최대 적수는 아마도 심리주의일 것이다. 그러나 프레게가 경계한 입장은 이것만은 아니다. 심리주의 못지 않게 수학적 경험론도 프레게의 주된 비판 대상이다. 수학적 경험론은 밀의 「논리학 체계」에서 진지하게 다루는 이론이다. 밀에 따르면 1+2=3과 같은 수식(數式)은 수 정의(이 경우 수 3의 정의)로서 뿐 아니라 경험적 사실들의 주장에 기여한다. 이를테면 한 단위와 두 단위로 보이는 두 구분되는 모음체(collection)들로 쪼갤 수 있는 대상들의 모음체들이 우리에게 경험적으로 주어짐을 주장하는 데에 기여한다. 산수 명제들이 우리에게 필연적 참으로 부각되는 이유는 이 명제들이 논박된 적도 전혀 없고, 경험에 의해 그토록 자주 예화되기 때문이다.


산수를 연역과학의 유형으로 만드는 것은 “같은 것들의 합은 같다” 또는 (같은 원리를 보다 덜 친숙하지만 보다 더 특징적인 언어로 나타내자면) ‘부분들로 이루어진 것은 그 부분들의 부분들로 이루어진다’처럼 너무도 포괄적인 법칙의 다행스런 적용가능성이다. . . 그리고 모든 산수적 조작은 이 법칙 또는 이 법칙으로부터 연역될 수 있는 다른 법칙들의 응용이다. 이점이 모든 계산에 대한 우리의 담보이다. 우리는 5 더하기 2가 7과 같음을 그 수들에 대한 정의가 결부된 귀납법칙의 증거 위에서 믿고 있다.11)

이런 견해에 대한 프레게의 반론에 따르면, 이는 세계의 대상들의 본성에 관한 우연적 경험적 사실들에 산수가 의존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컨대 한 방정식의 세 근이 존재함과 같이 수가 비경험적 상황들에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에 대응하는 경험적 모음체가 전혀 없을 수도 있는 매우 큰 수의 존재를 위협할 것이라는 점 및 수 0에 대응하는 관찰가능한 모음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된다(「기초」, § 7) 칸트에 따라서, 프레게는 경험적 사실들이 없이는 우리는 결코 수학적 진리를 인식할 수 없게 될 것임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곧 산수가 그 정당화를 경험적 진리들에 의존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본다.(「기초」, § 7) 일반적으로, 수학적 경험주의는 수학적 명제 그 자체와 그 명제들의 경험적 상황들에 대한 적용간의 혼동으로부터 기인한다. 덧셈 자체는 물리적 조작이 아니라 어떤 물리적 조작을 반영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기초」, § 8)

프레게는 수학적 진리와 경험적 진리는 상호 관계가 있지만 그 관계는 수학적 경험론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라고 한다. 경험과학에서의 추론은 실제로 수학적 진리의 선행적인 확립에 의존한다. 경험과학은 귀납에 의해 진행된다. 경험적 증거들에 의해서 가설들이 다소간 개연적인 것으로 된다. 그러나 만일 귀납이 우리의 기대에 관한 심리학적 사실의 지위보다도 더 높은 지위를 허용받는다면 경험적 지지의 관계는 수학적 확률 이론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확률 이론이란 어떤 기본 산수 진리를 확립해야만 가능하다.

독일에서의 자연주의는 경험론의 극단으로 전개되어 갔기 때문에 자연히 프레게의 표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주의는 19세기 중반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경험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철학은 물론 논리학, 수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이 있었다.12) 철학적으로 자연주의자들은 일종의 물질 현상(두뇌활동의 산물)으로서의 감각에 기초한 극단적 경험론의 입장을 수용하면서, 선험적 추리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철학을 거부한다. 이들에 따르면 개념이란 감각 활동에 대한 반성일 뿐, 본유관념이란 없다. 수학의 개념조차도 경험에 뿌리를 둔 것으로 간주되며, 사유법칙들은 자연 세계의 기계법칙(역학법칙)과 동일시된다. 논리법칙은 인간의 정신 작용의 경험적 일반화에 불과하고, 정신 작용은 다시 생리학 개념으로 해석된다. 이 자연주의는 수학, 논리학 해석에 큰 영향을 주었다. 논리학, 수학에서의 자연주의에도 여러 분파가 있지만 그 공통 목적은 자연과학의 승인을 못 받은 어떤 ‘초험적’ 요소에의 의존도 피하자는 것이었다. 프레게 당시 심리학은 자연과학으로 간주되었는데, 일찍이 칸트 등은 논리학이 규범과학으로서 사유의 정확성 여부에 답할 수는 있지만 실제 사유가 일어나는 방식을 기술해주지는 않는다고 주장한 반면, 자연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은 논리법칙을 단지 사유에 대한 기술(記述)법칙일 뿐이라고 가정하는 경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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