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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 기자의 바깥 [11] 시간강사

여객전무 2009. 9. 28. 13:09
사회
[최윤필 기자의 바깥] <11> 시간강사
"교수의 꿈 포기한 지 오래, 연구·교육자로 살 수 있었으면…"
언제 강의 끊길지 몰라 불안, 강사료 1년에 1400만원, 아내가 같이 벌어… 나은 편 속해
중학생 아이에게 실패담 들려줘 "세상은 변하니 네 인생 설계하라고"
- 요즘은 어디 어디 뛰고 있냐? 이제 어디 자리잡을 때도 됐는데….

- ….

"간만에 만나거나 통화라도 하게 되면 시골 친구들 첫 마디는 늘 저런 식이에요. 걔들 눈에 전 언제나 '뛰어다니는 사람'이죠. 생각 없이 뛰어다니던 때…, 그러니까 꿈이랄까 희망이랄까 하는 게 있던 때는 대수롭지 않았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자연스럽게 쓰는 관용어잖아요. 그런데 제 나이 40이 넘으니까 슬슬 불편해지데요. 허덕임, 헐떡임 같은 게 느껴지잖아요. 덧없는 헐떡임…. 안 그래요?" (어문학 강사 경력 25년의 A씨)

현역 시간강사(비정규 교수)가 전국에 7만 명이 넘고, 그들이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떠받치고 있다지만, 인터뷰에 응해줄 사람을 찾기란 의외로 쉽지 않았다. '노는 물'이 좁아 어지간해서는 신분을 감추기 어렵고, 험한 말 잘못했다가 찍히기라도 하면 전임은커녕 강의도 못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좋은 직장 높은 자리에 앉아있다가 만년에 은퇴해 '실무지식을 후학들에게 전수하고자' 나선 사람들, 강사밥 덜 먹어 험한 꼴 덜 본 그래서 아직 꿈만은 포실한 젊은 연구자들, 전임 희망 초개처럼 털고(어쩌면 털리고) 동료들이나마 구제하자며 피켓 들고 길거리로 나선 강사들은 배제했다.

비정규직 보호법을 흘낏거리며 2학기 수강신청까지 다 받아놓은 시간강사 88명을 일거에 해촉한 고려대에서, 그 조치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영곤(61)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고려대 분회장도 "그런 조건으로 할 말 다 해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한테 와서 자신의 억울함을 한참 하소연해놓고는 제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어렵사리 만난 A씨는 학위 받고 3년 가량 열심히 덤벼본 뒤 일찌감치 미련을 버린 경우. 2년 간 전공어 국가로 초청유학도 다녀왔고 세칭 SKY대에서 박사 학위도 받았지만, 외국서 학위 받아온 이들도 많고, 그 벽도 높더라고 했다.

"같은 대학의 교수 채용 최종심에 두 차례나 오른 적이 있어요. 경쟁자 3명 가운데 정량평가가 가능한 강의 경력이나 연구실적에서는 제가 앞섰는데 결국 외국 학위자가 낙점되더군요. 뭐, 그럴 수 있다고 봐요. 다른 내막이야 모르겠어요. 어쩌겠어요."

그는 진지하고 온건했고, 또 겸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나거나 통화한 이들 중 여럿처럼 교수 수급 구조와 대학ㆍ재단의 횡포에 대해 성토하지도,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정부와 국회를 질타하지도 않았다.

시간강사들의 모래알 구조가 온존하는 한 그 어떤 개선도 개혁도 없을 것이라며 진영의 기회주의와 나약함을 두고 비분강개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처지나 전망의 영향이 크겠지만, 그에게는 씁쓸한 자기연민도 처연한 냉소의 기미도 거의 없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시간강사의 전형_ 아마도 선입견이나 편견의 소산일_ 과는 사뭇 달랐다.

교수 임용 심사는 대학별로 대개 서너 단계로 치러진다. 1차는 연구성과 평가다. '4년 이내 몇 편 이상의 논문' 식의 자격 조건이 붙기도 한다. 2차는 공개 강의 및 학장 면접이다. 1차와 달리 심사하는 교수들의 재량이 대폭 발휘되는 단계이고, 그만큼 부작용과 잡음도 많아 공개강의의 경우 희망자만 하라고 하는 대학도 있고, 타 대학 교수들을 심사에 가담시키기도 한다.

극소수라 믿고 싶지만, 덜 된 교수들로 하여금 제자를 종처럼 여기게 만들어주는 권력도 저 2단계의 포괄적이면서 흐리터분한 기준에 크게 기댄다. 최종 단계에서는 3배수의 인원을 두고 총장ㆍ이사장 등이 면접을 치른다.

경쟁률은 전공에 따라 다르지만 포괄전공 채용의 경우 50대 1을 넘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를 두고 우리 학문사회의 층이 그만큼 두터워졌다며 뿌듯해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제 전공은 수요가 비교적 많은 편이라 강의 자리는 내내 아쉽지 않았어요. 때로는 번역 아르바이트도 했고, 출강하던 곳에서 만난 대학원생과 결혼해 아이 둘을 낳았지만 아내도 시간강사와 중등학교 기간제교사 등으로 일하며 살림에 보태 생계에도 큰 어려움은 없어요."

물론 그건 그가 '좋은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이력서가 빈약한_ 너덧 개 대학 출신을 제외한_ 강사들은 모교에서 안 받아주면 강의 자리조차 얻기 힘들고, 그들 입장에서 보자면 명문대 출신 강사들의 이런저런 푸념은 배 부른 자의 트림소리쯤으로 들릴지 모른다. 몇 년 전 서울대 출신 한 시간강사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학교 뒷산에서 목을 맨 뒤, 뒷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 강의를 얼마나 하시나.

"평균 세 강좌 정도 하죠. 젊을 땐 경력에 도움이 될까 해서 야간강좌까지 해서 심지어 30강좌를 끌고 간 적도 있어요. 그 정도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죠."

- 그래서 월 수입은.

"세 강좌면 9시간인데 실습 1시간 포함해서 주당 10시간이죠. 시간당 5만원 잡으면 주급 50만원, 4주 잡으면 200만원인가요? 방학땐 수입이 없으니까 1년을 7개월로 치면 연봉 1,400만원이고 계절학기 두 달 하면 1,800만원이네요."

강사 시급도 학교별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다. 서울지역 명문 사립대가 가장 후한 편인데 그게 5만원 내외. 중하위권 대학은 3만원 남짓이고 수도권 중하위권 대학과 지방 전문대의 경우 빠듯하게 2만원인 곳도 적지 않다.

2008년 9월 교육과학기술부가 발간한 '대학강사 기본현황 분석 보고'에 따르면 국립과 사립대를 평균한 전임 연봉은 4,123만8,000원, 강사의 평균 연봉은 999만원이다. 물론 시간강사에게 4대 보험 등 사회보장 혜택은 없다.

- 강사라 힘든 점은.

"뭐니뭐니해도 불안감이죠. 제 경운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늘 불안해요. 언제 어디 강의가 끊길지 모르니까, 늘 예비책을 마련해두려고 해요."

성의 있는 학교는 강사들에게 해당 학기가 끝나기 전에 다음 학기 위촉 여부를 통보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도 적지 않다고 한다. 최근 고려대 등 일부 대학의 경우 2학기 수강신청까지 끝난 상태에서 해촉 사실을 통보했다.

그들은 갑자기 비게 된 은행 통장의 입금란 못지않게 시간의 공백까지 감당해야 한다. 강의가 적어져서 시간이 남을 때 개인 연구 열심히 하라고, 좋은 기회를 낭비하지 말라고 격려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물론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과부 사정 몰라주는 화냥년의 헛소리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대다수 시간강사들은 차비 빼고 밥값 빼면 남는 것도 없는 '허름한' 강의 요청도 어지간해서는 거절하지 못한다. 또 그래서 '돈 안 줘도 되니 강의만 맡겨달라'고 애원하는, 그 '허름한' 대학 출신 강사들이 설 자리는 그만큼 줄어든다.

그래도 매년 은퇴하는 교수들은 있고, 신임 교수도 그만큼은 있다. 그 단순하고도 명확한 사실이 7만명 시간강사 대다수가 기대는 희망의 방정식이다. 물론 그 방정식을 푸는 이들은 극소수지만 말이다. 서울 명문 사립대를 1980년대 말에 졸업해 유학 가서 학위를 따온 뒤 실로 긴 기다림 끝에 최근 전임 자리를 꿰찬 한 교수는 "자신은 운이 좋았던 경우"라고 말했다.

"쏠림 현상이 심해요. 매년 교수로 채용되는 이들의 출신 학교를 보세요. 70~80%는 서울대예요. 두어 개 대학 출신들이 나머지 자리에 양념으로 들어가죠. '양념'들도 자격, 능력, 실적으로 공정하게 평가 받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도 '둘을 뽑으면 하나는 실력'이라는, 근거도 없고 믿기지도 않지만 그냥 믿고 싶은 말을 시간강사들은 믿고 살죠."

A씨도 '교수'였던 때가 잠시지만 있었다고 한다. "모 대학에서 시간강사들에게 겸임교수 신청하면 받아주겠다고 제안하더군요. 겸임교수가 되면 급여는 같지만 연구비가 월 20만원 정도 더 나왔어요. 하지만 그리 오래 하진 못했어요. 대학평가를 받기 위해 교수 숫자를 급히 늘려야 해서 취해진 편법이었거든요."

그는 이제 중학생이 된 아들에게 가끔 자신의 인생 실패담을, 극복논리와 함께 들려준다고 했다. "아이에게 늘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조언해요. 세상의 가치관은 늘 변한다, 내 어릴 적 열망과 꿈은 어떠했는데 세상은 어떻게 바뀌더라, 미래를 상상하고 네 인생을 설계해라, 그런 말을 해주죠."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때는 직장을 골라 취직하던 시절이었고, 동기 중에는 지금 공기업 고위직도 있고, 벌써 밀려난 친구들도 있다. '취직=전임'이라고만 믿어 다른 대안은 생각해본 적 없었고, 이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마흔 살이 다 됐더라는, 요컨대 상상력이 부족했던 그는 지금도 '뛰고' 있다.

그래도 "이제라도 상상력을 발휘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는데 그가 생각하는 시간강사의 상상력은 어떤 것일까. "교수든 강사든 신분은 달라도 연구하고 강의하는 삶의 조건은 동등하죠. 학문 분야에서 스스로 개척해나갈 수 있는 아이템을 찾지 못하면 교수는 승진심사용 논문이나 쓰고 학생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강의밖에 더 하겠어요? 강사도 마찬가지고요. 조직에서 소외받는 강사지만 또 그래서 보다 자유롭게 강의 및 연구 아이템을 발굴할 수 있어요. 학문하는 인간으로서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거죠."

그는 최근 자신이 '발굴'한 몇 가지 연구ㆍ강의 아이템을 들려줬고 다들 그럴싸하게 들렸지만, 이미 몇몇 대학에 강의 개설 신청을 해둔 터라기에 아쉽지만 덮어두기로 했다.

다만 그는 전임_시간강사라는 지위의 차별성보다 교수는 아니어도 연구자ㆍ교육자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풀타임 계약직 등 다양한 통로와 장을 통해 연구ㆍ강의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비교적 안정적인 장치들을 마련해둔 곳이 많아요. 반면에 우리나라 시간강사들은 완벽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죠."

인터뷰를 다 한 뒤, 신상을 드러낼지 여부를 결정하자는 게 우리의 약속이었다. 교정을 나서며 그는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가려달라고 어렵게 말하며 흐릿하게 웃었다. 그게 끝내 어쩌지 못하는 자기연민 혹은 자기모멸의 낯빛처럼 느껴져 살짝 불편했으나, 그건 내 착각이거나 마음의 투사였을 공산이 크다. 하늘도 끄무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