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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 기자의 바깥 [8] 인디밴드 '타바코 쥬스'

여객전무 2009. 9. 29. 13:12

 

 

 

스포츠
[최윤필 기자의 바깥] <8> 인디밴드 '타바코쥬스'
음악, 열심히 안 하니 즐겁다… 마음가는 대로 하면 그 뿐…
인디록 사령부 '루비살롱'의 찌질이들… 술 마시면? 공연 몰라… 스리코드만? 그걸로 충분… 2류라 깔봐도? 뭐 어때
홍대 권역에서 활동 중인 인디밴드 숫자는 알 길이 없다. 1,000개쯤은 된다는 이도 있고, 500개는 넘을 거라는 이도 있으니 그 사이 어디쯤 될 것이다. '타바코쥬스'도 그들 가운데 하나다.

2004년 결성해 3년쯤 뒤에 디지털 싱글 앨범을 냈고 올해 초 정규앨범('쓰레기는 어디로 갈까요?')까지 구웠으니, 이합집산이 흉도 아닌 그 바닥 풍토에 비춰 보자면 꽤 근성 있는 팀인 듯도 한데…, 들리는 얘기는 꽤나 깔끄럽다.

그들의 소속사인 인디레이블 '루비살롱' 대표 리규영씨조차 그들을 서슴없이 까는데, "홍대 최고의 찌질이들"도 모자라 아예 "한 마디로 진상들"이라더니, "공연 뒤풀이장의 쓰나미"라는 남들이 보는 흉까지 옮겨 전할 정도다. 품행을 두고 하는 말들일 텐데, 홍대 근방에서 '인디' 한다는 이들에게 품행의 값어치가 얼마나 중한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자.

그들의 음악은 어떨까. 기타 하나만 둘러메도 '내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레드 제플린 뺨친다는 그 바닥을 6년째 굴러온 이들 아닌가. 드물게 발견한 한 음악평론가의 평이다. "홍대 앞에서 가장 찌질한 가사에 단순하기로 따지면 천하 제일의 음악을 결합했다… 스리코드 펑크 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음악은 없다."

'스리 코드'란 도미솔, 도파라, 솔시레의 가장 '소박한' 화음을 일컫는데, 좋게 말해 꾸밈없는 음악이고 정직하게는 단순ㆍ유치한 음악이라는 의미다. 그래도 그들은 겸연쩍게 웃을 뿐 좀처럼 토를 다는 법이 없다. 항변이라도 해보라고 보챈다면, "그러니 어쩌라고?" 하며 반문할, 그런 팀이다.

타바코쥬스의 소속사 루비살롱은 인디계 최고의 레이블이라 할 만한 회사다. 홍대 밴드 생활에 지쳐 인천으로 낙향한 리규영씨가 2006년 '피신처' 삼아 부평역 광장 건너편 모텔촌 귀퉁이에다 꾸린 라이브카페 겸 작업실이었다.

자본금 1000만원(전세보증금). 음악하면서 안면을 텄던 팀들이 자의반 권유반으로 하나 둘 들러 공연도 하고 음반도 내곤 했는데, 운이 트였던지 리씨의 안목 덕이었던지 그의 주변은 금세 화려해졌다.

'2008 한국대중음악상' 록 부문상을 수상한 갤럭시 익스프레스, 첫 음반을 대한민국 100대 명반 반열에 올린 이장혁밴드, 데뷔 앨범 1만장 판매라는 경이로운 기록의 검정치마 등 인디계의 스타급 밴드들을 휘하에 거느리게 된 것.

로큰롤의 불모지 인천에 세운 록 게릴라들의 허름한 비트가 한국 최정예 인디록 군단 사령부가 된 셈이다. 타바코쥬스는 루비살롱의 1호 팀인데, 후발 팀들이 하나 둘 떠올라 대형 홀에서 전 좌석 매진 공연을 잇달아 펼치는 동안에도 그들은 늘 '처음처럼'소박했다.

"디지털 싱글 발매공연 때의 관객은 달랑 3명이었어요. 망했죠. 앨범도 물론 망했습니다. 올해 초 정규앨범 발매공연에는 100명 정도는 왔어요. 앨범도 500장이 매진돼 1,000장을 더 찍었는데 지금 500장 정도 남아 있어요. 그만 하면 많이 좋아진 거죠." 리 대표의 말이다.

보컬 겸 리더인 권기욱(33)과 기타 겸 보컬 권영욱(28)은 형제다. 둘은 툭하면 다투고 툭하면 음악 관둔다며 번갈아 나자빠지는데 한두 달 그러다가 다시 뭉치는, 그래서 찌질이라 불려도 할말없는 이들이다.

술 마시느라 공연 펑크 내는 건 예사라 공연 전에 그들에게는 술을 안 주는 게 홍대 클럽가의 불문율. 드럼의 백승화(27)는 자타공인 "드럼만 안 되고 다른 건 다 되는", 그래도 타바코쥬스에서는 상식적으로 가장 버젓한 멤버다. 원년 멤버인 베이스의 조파니는 "취직해서 돈 벌겠다"며 얼마 전 팀을 떠났다고 한다.

"베이스가 떠났으니 자기들도 또 음악 관두겠대요. 조파니 없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리 의리 있는 놈들도 아닌 것 같고 그리 좋은 베이스도 아닌 것 같은데, 세션 구해서 좀 더 해보자고 해도 막무가내로 못 한대요. 그런가 보다 했더니 또 얼마간 놀고 와선 다시 시작했어요. 지금 공연 멀쩡하게 하고 다녀요. 찌질이들…."

이들이 그나마 홍대 바깥에 알려진 건 음악 덕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다. 계원예대 애니메이션과를 졸업해 영화사를 기웃거린 이력이 있는 드럼의 백승화가 ENG카메라를 하나 빌려 루비살롱 다큐멘터리('반드시 크게 들을 것')를 찍었고, 그걸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했다가 덜컥 상을 타게 된 것이다.

그 영상 속 리더 권기욱의 인터뷰 장면. "요즘 내가 나루토를 보고 있는데 느낀 게…, 존나 열심히 안 하면 안 될 것 같애. 근데 우린 열심히 안 하잖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그 천연덕스러운 달관의 자학과 느긋한 페이소스가, 영화를 본 극소수의 관객 사이에서 화제가 됐고, 한 방송사 개그 프로 담당자가 전화까지 했다고 한다. 그 컨셉을 개그의 소재로 쓰겠다는 거였는데, 하필 전화를 건 타이밍이 권 브라더스의 취중이었던 것. "대뜸 '꺼져, X까, X발…'로 응수했다는 겁니다. 그 미친 X들이…"(리규영 대표)

실제로 그들은 성실하지도 않고, 열심히 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음악을 하는 것은 "그냥 좋아서"다. 백승화의 말이다. "구성원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다들 달라요. 너바나를 좋아하는 친구도 있고, 모던팝을 좋아하는 친구도 있죠. 우리 음악은 펑크 풍이고…, 열심히 안 한다고들 하는데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 안 깨지고 함께 즐겁게 음악을 할 수 있었다고 봐요."

각자의 고집 내세우지 않고 맞춰왔다는 얘기인데, 이를 뒤집어 보자면 '열심히 안 하려고 나름 무지 열심히 했다'는 타바코쥬스 식 항변인 셈이다. 테크닉도, 음악도 일류는 못 된다는 평에 대해서도 그는 "솔직히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반문한다. "그래도 일류들이 반드시 좋은 음악을 하는 건 아니지 않아요?"

스리코드 음악은 고집인가 능력인가 묻자 기타의 권영욱은 "실력이 안 된다"고 유쾌하게 답한다. "우리 음악에 그 코드면 충분해요. 그래서 불만 없어요. 우리 음악 좋아하는 사람도 몇 명은 있고…." 그는 하지만 "이제 조금 질린다"고, "앞으론 코드 한 두 개 더 넣어서 해볼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을쯤 대여섯 곡을 묶어 세 번째 앨범을 내보자고 멤버들끼리 느슨하게나마 약속을 했고, 형과도 싸우지 않고 가급적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고, 최근에는 별로 싸우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전하자 리 대표는 "안 믿는다"고 했다. "두고 봐야죠. 연습을 해야 녹음을 하지…."

그러면서도 리 대표는 그 '미운 오리새끼'들이 아주 밉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 역시 고교생 때부터 밴드를 기웃거렸고, 타바코 밴드 못지않은 '홍대의 망나니'로 통했다.

"우리 레이블에서 가장 먼저, 또 가장 많이 뜬 팀이 갤럭시 익스프레스인데, 그들이 대형 무대에서 공연할 때 타바코쥬스는 소주병 뒹구는 자취방에 앉아 통기타랑 문방구에서 산 실로폰 들고 놀잖아요. 그 차이를 두고 누가 더 행복한지, 누가 더 즐거운지 비교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리 대표는 "그래도 최근엔 타바코쥬스를 불러주는 데가 꽤 된다"며 뿌듯해했다. "이런저런 영화제에서 그 다큐멘터리를 상영한 뒤 공연을 올리겠다는 제의가 가끔 있어요. 주안영상센터와 CGV 어딘가 극장에서도 그런 요청이 있고…."

소속사라고는 하나 루비살롱이 타바코쥬스나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맺은 계약은 없다. 그냥 좋아서 함께 하는 거고, 마음이 떠나면 그만둔다는 암묵적인 합의만 있는 셈이다. 돈은 좀 벌었냐고 묻자 "카드값 걱정 월세 걱정 안 하고, 다른 돈벌이_그는 전기기사 자격증이 있다_ 안 해도 버틸 정도 됐으니 그만 하면 많이 번 셈"이라고 말했다.

"지금 루비살롱이 주목받는다고는 하지만 이게 오래 가리라 믿지는 않아요. 금세 스타가 됐다가 금세 소비되고 마는 세상이잖아요. 내일 그만둬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각오로 더 열심히 하자는 게 아니라, 정말 그런 마음으로 내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자는 게 제 마음입니다."

그 얘기가 결국 타바코쥬스의 밴드 이야기, 음악 이야기일 것이다. 영화에서 카메라를 든 백승화가 리 대표에게 "록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는데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무 것도 아냐. 아무 것도 없지. 공연 끝나면 텅 비고 다들 돌아가잖아. 한 판 놀았으면 끝이야, 가는 거야 이제…."

같은 질문을 자기 팀 멤버에게 묻는데, 조파니가 대뜸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수화기에다 대고 고함을 지른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 &&*% 미친 X아!"

술자리에서는 다들 피하고, 2류라고 깔봐도 그들은 '뭐 어때'로 일관한다. 음악에 거창한 의미도 달지 않고, 꿈이니 열정이니 하는 올가미로 현재를 옥죄지도 않는다. 돈이 떨어지면 여자친구가 일하는 액세서리 가게에 나가 핀을 팔면서도 그들은 기타를 쥐고 주섬주섬 자취방에 모여 스리코드의 소박한 화성으로 '눈물의 왈츠'를 열창한다.

다들 골초면서 정규앨범 첫 트랙 곡명이 '담배를 끊어요'다.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 "술은 입에 대지도 말아요~"라고 노래한다. 또 어딘가에서 자신들을 불려주면 신이 나서 달려갈 것이고, 술자리에 발목을 붙들리지만 않는다면, 또 2류들의 공연을 신나게 즐길 것이다.

얼굴 좀 파랗고 키가 좀 작아도 괜찮아

지나가는 연인들 날 보고 웃어도 괜찮아

900년 동안 애인이 없었지만 괜찮아 … 드넓은 우주에 혼자 좀 있어도 괜찮아

-'요다의 하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