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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 기자의 바깥 [7] 카페 갤러리 키미 아트

여객전무 2009. 9. 29. 13:10

 

 

 

문화
[최윤필 기자의 바깥] <7> 카페 갤러리 '키미 아트'
무명 작가들에겐 희망·영감의 공간… 언젠가 돌아와 쉬고싶은 그 곳
운영자 백미옥씨 일본 소형 갤러리 본떠 만들어
2004년 개관 이래 100여명 신예 등용문 역할
36명 배출작가 '연어'처럼 돌아와 5주년 기념전
카페 갤러리 '키미 아트'를 안 것은 2년여 전이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 형제봉 치마폭에 다소곳이 앉아 북악 능선을 정면으로 마주한 곳. 팥빙수와 차가 맛있다는 친구의 추천에 끌려 간 길이었는데, 정작 차의 맛을 느끼기도 전에 그 전망의 파노라마에 압도됐던 기억이 있다.

현관을 들어서면 아담한 갤러리가 나타나고, 계단을 오르면 카페다. 근사한 친구와 조용히 시간 보내고 싶거나 스스로를 근사하게 대접해주고 싶을 때, 가볍게 달지 않고 천하게 차갑지 않은 팥빙수가 그리울 때 그 곳을 찾곤 했다.

공간과 안면을 익힌 뒤론 카페로 오르기 전에 갤러리를 둘러보곤 했다. 크고 작은 방들로 구획된 갤러리는 유년의 다락방처럼 아늑하다. 그 아늑함은 시선의 간섭 없이 작품과 고요히 대면할 수 있다는, 모종의 은밀함에서 온다.

그런 느낌에 젖어 머물다 보면 작품들이 지닌 저마다의 개성이 공간과 어우러져 작품과 공간의 구분이 흐릿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갤러리는 그냥 편한 방처럼도 보이고 거실처럼도 느껴지는데, 그 공간과 작품의 풍경 안에서 가끔은 나도 작은 정물이 되곤 했던 것 같다. (실제로 키미는 가정집을 그 구조를 살려 개조한 공간이다.)

그렇게 알던 키미를 며칠 전 '일' 때문에 찾아갔다. 키미의 다른 매력을 듣게 됐던 것이다. 키미는 5년여 전 문을 연 이래 지금껏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마음껏 활개칠 수 있도록 열려있는 전시 공간인데 그간 키미를 거쳐 간 작가들이 무려 100여 명에 이른다는 것, 상당수가 키미를 통해 프로작가로 데뷔해 이제는 제 분야에서 제법 대접받는 작가로 성장했으며 그 중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초대작가도 있다는 것, 그들 중 36명의 작가가 모여 내달 키미 다섯 돌 기념전시를 한다는 게 전해들은 이야기의 대강이었다.

세상이 잘 알지 못하는 키미의 이야기도 다사롭지만, 이제 훌쩍 자란 작가들이 저들에게 좁아졌을 키미의 작은 기념일을 챙겨 와글와글 모인다는 이야기도 흘려 듣기 아까웠다.

키미의 주인도 어떤 이인지 궁금했다. 듣자니 그는 키미아트의 디렉터겸 화가인데 키미와 연관돼 자신의 이름조차 노출되기를 꺼려왔다고 한다. 그가 백미옥씨다.

심지어 지인들조차 그를 키미의 입주작가로 알고 있고, 이따금 오는 카페 손님들은 그를 '주방 보조' 쯤으로 아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사코 인터뷰를 피하는 그를 "키미 5주년과 작가들 얘기를 주로 하자"는 조건을 달아 만났다.

-갤러리 개관 동기는.

"1980년대 초 한일교류전 때문에 일본을 오가면서, 나가사키나 큐슈 등지의 작은 동네에 있는 아담하고 소박한 갤러리들을 보게 됐어요. 오래 전 살다간 이름없는 화가들의 자택 겸 작업실을 요란하게 손보지 않고 개조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유명하지 않은 화가이고, 내내 그렇게 남더라도 제가 간 뒤에 제 작품들이 놓여질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죠."

-주로 신진 작가들의 전시 공간으로 활용된다던데.

"그림 공부를 더 하려고 2001년에 미국 애리조나엘 갔었어요. 거기서 미국 화단에서 꽤 유명한 한 선생님을 만나 배웠는데 그 분이 제 포트폴리오를 뉴욕 화랑가에 보내셨어요. 그 덕에 두 곳의 갤러리에 초대됐고 2년간 브로드웨이의 '플로어 갤러리' 소속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어요. 귀국 직후인 2004년 10월에는 베를린에서도 개인전을 했고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은 그 일의 보은(報恩)인 셈이죠."

-작가는 어떻게 발굴하시나.

"매년 11월께 'Kimi for You' 공모전을 합니다. 첫 해인 2003년 11월에는 130여 명이 참가했고, 해마다 200~300명 씩 출품을 해요. 그 가운데서 저와 큐레이터 등등이 상의해서 선발하는데 작품도 진지해야 하지만 저희 공간과 조화해서 예술적으로 더 나아갈 길이 보이는 작가를 유심히 살펴요. 또 작가의 개성 못지않게 품성도 봐요. 치열하면서도 겸손하고 순수한 작가를 환영하죠."

-개관전이 2004년 3월인데 그 전 해 말에 응모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던 건 의외다.

"큐레이터가 고생을 많이 했죠. 또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미술 대안공간이 거의 없었어요. 대학원을 갓 졸업했거나 유학 마치고 국내 데뷔무대를 찾던 신진 작가들에게 키미 같은 공간이 절실히 필요한 때였어요."

-어려움도 적지 않았을 텐데.

"젊다 보니 의욕이 앞서 작품의 마무리가 허술한 경우도 있고, 예술적 자의식이 제 그릇에 넘치는 경우도 있죠. 큐레이터랑 저랑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 다니며 작품에 대해 끈질기게 협의하고 토론하기도 했어요. 재정적으로도 힘들긴 해요. 은행에서 빌린 돈도 좀 있고…, 사설 갤러리라 서울문화재단의 기금 지원(지난 해 처음 500만원을 받아 영상기획전을 했다고 한다)도 박해요."

그는 열심히 설명하다가도 이따금 멈칫하며 "이 공간과 작가들에 대해서만 써달라"며 거듭 다짐을 받곤 했고 "우리 갤러리가 이만큼이나마 알려진 것도 작품을 응모해준 작가들과 작품을 전시한 공모 작가들의 공"이라 말하곤 했다.

그는 대구에서 나서 자랐고, 한양대 사범대(교육학)를 나와 5년 남짓 고향 인근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어릴 적부터 꿈은 화가였다고 한다. "양친 모두 국문학을 하셨고, 교직에 계셨어요. 그림이라면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하셨죠."

그래도 그는 서른 셋 되던 해에 돌연 학교에 사표를 던지고 그림 공부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세 차례나 낙방한 끝에 계명대 미대 대학원에 진학했고, 졸업 후 2년 정도 학교에 남아 강의와 연구원 생활을 하다 다시 영남대 미대 학부 3학년으로 편입한다.

"독일서 공부하고 온 선생님들이 계셨어요. 신표현주의 화풍이 좋았고, 자유분방한 교풍도 부러웠어요." 영남대를 졸업하고 단신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는 "그 때나 지금이나 저는 작가이고, 죽을 때까지 작가로 남고 싶다"고 말했고, 하루 대여섯 시간은 꼭 캔버스 앞에 서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어떨 때 보람을 느끼나.

"저희 갤러리엔 메이저 급 갤러리처럼 아주 비싼 작품은 많지 않아요. 그런 만큼 정말 작품을 즐기는 분들이 많이 오세요. 그런 분들 만나면 신이 나서 설명을 해드리는데 성급하게 작품을 구입하려고 하면 때로는 말려요. '전시기간이 두 달이나 되니까 이따금 오셔서 더 보고 결정하시라'고 권하죠. 정말 귀하게 여겨주실 분이 작품을 구입하는 게 작가로서나 저희나 보람 있는 일이죠."

5주년 기념전 이름은 '키미의 연어들(Salmons of KiMi)'이다. 혼인색을 띠고 회귀하는 연어들처럼 '저 이만큼 컸습니다' 하며 뽐내는 작가들의 자리이고, 저들의 모태를 이름처럼 더 귀(귀)하고 아름답게(미) 치장하려 온 그 어엿함을 키미가 뽐내는 자리이다. 백씨는 이 행사와 관련해 메일이나 전화를 걸어 참여를 종용하지 않고 갤러리 홈페이지에 공고만 했다고 한다.

"작가 36명이 모이는 자리는 흔치 않죠. 다들 바쁜 이들인데 저로선 더없이 고마운 일입니다." 백씨는 "큰 빚을 지게 생겼다"며 감격스러워했다. 1층 공간은 7명의 입체 작가와 13명의 평면 작가가 맡아 공간의 네트워크 쇼 형식으로 꾸미고, 2층은 14명의 작가들이 5주년 축하 이벤트 형식의 공동작업과 소품으로 꾸밀 예정이라고 한다.

● 작가들에게 키미는…

-윤정선 작가. "키미를 만나고부터 제 작업이 입체에서 평면으로 바뀌었어요. 꾸준히 해오던 예술적 고민의 해답과 용기를 키미에서 얻은 거죠. 제게 키미는 새로운 자극과 희망의 공간입니다."

-홍남기 작가. "키미와 함께 한 시간 동안 제 작품세계가 넓어지고 깊어졌다는 것을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또렷한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었어요.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저를 이만큼 키워준 공간이죠."

-필승 작가. "저처럼 젊은 작가들에겐 집 같은 곳입니다. 쉴 수 있는 공간을 주고, 부모님처럼 항상 작업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어른이 계신 곳이죠."

-류희선 작가. "키미와의 인연으로 커피가 제 작품의 재료이자 작업의 파트너가 되었어요."

-박종호 작가. "학교 울타리 안에서 답답해하던 제게 작가로서의 실마리를 풀게 해준 곳이에요."

-한윤정 작가. "여러 작가들과 교유하며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계기였어요. 그 경험이 제겐 새로운 시작이고 작은 역사입니다."

-성인제 작가. "학창시절 키미를 생각하며 그 공간을 갈망했어요. 제 소망이 이뤄졌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박건희 작가. "키미를 통해 데뷔했어요. 제 가능성을 열어준 곳입니다."

그들에게 백씨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나가 열심히 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언제든 나를 작업실로 불러 작품을 보여줘." 이들의 느슨한 듯 애틋한 연대가 오늘의 키미를 만들었을 것이다. 기념전은 이 달 28일부터 40일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