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조선왕릉탐방 - 순창원, 수경원, 대빈묘

여객전무 2009. 11. 24. 09:29

문화재 향기
[조선왕릉의 비밀 22 - 순창원, 수경원, 대빈묘]
2009-11-23 오후 04:35






                                        < 순창원 | 順昌園 >



조선 13대 명종의 큰아들 순회세자(順懷世子, 1551~63)와 그의 빈 공회빈(恭懷嬪, ?~1592) 윤씨의 능이다. 순회세자는 7세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황대임의 딸과 혼담이 오갔으나 그녀가 병약하여 1년 넘게 가례를 미루자 1559년 윤옥의 딸로 세자빈이 교체되어 가례를 올렸다.



그러나 순회세자는 가례를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후사도 잇지 못한 채 1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이 때문에 명종의 대를 이어 중종의 손자 하성군(선조)이 대통을 이었다. 공회빈 윤씨는 1592년(선조 25) 승하했다. 



 
                                        < 수경원 | 綏慶園 >



 조선 21대 영조의 후궁 영빈(暎嬪) 이씨(?∼1764)의 능이다. 영빈 이씨는 어려서 궁중에 들어가 영빈에 봉해졌다. 영조의 깊은 총애를 받았으며, 4명의 옹주를 낳은 뒤 1735년에 사도세자를 낳아 후사를 기다리던 영조를 기쁘게 하였다. 1762년 사도세자가 폐위당하고 죽음을 맞는 슬픔을 겪으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1764년 69세로 승하하자 영조는 매우 애통해하면서 후궁 제일의 의식으로 장례지냈다. 처음에 지금의 연세대학교 안 수경원에 안장되었는데, 1970년 영빈 이씨의 원묘와 홍살문 등 원형 그대로 이곳으로 옮겨졌다. 화려하지는 않으며 무덤 앞 석물들도 단출하게 꾸며져 있다.



                                        < 대빈묘 | 大嬪墓 >



조선 19대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禧嬪, ?~1701) 장씨의 묘이다. 희빈 장씨는 어려서 나인으로 궁에 들어가 숙종의 총애를 받았다. 1686년(숙종 12) 숙원(淑媛)이 되었으며, 1688년 왕자 윤(경종)을 낳았다. 이듬해 숙종이 송시열 등 서인의 반대를 물리치고 윤을 원자로 책봉함에 따라 내명부 정1품 희빈에 올랐다. 그해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었고 윤이 세자로 책봉되면서 왕비로 책봉되었다.



1694년 서인들의 인현왕후 복위운동을 계기로 남인이 옥사를 일으켰으나 숙종이 오히려 남인을 제거하고 서인을 재집권시킨 갑술환국이 일어났다. 그해 인현왕후가 복위됨에 따라 다시 희빈으로 밀려났다. 1701년 민비가 병으로 죽자, 인현왕후를 무고했다는 서인의 탄핵을 받아 사약을 받았다. 숙종은 이후 빈을 비로 승격하는 것을 법으로 금했다. 원래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문형리에 장사지냈는데, 1969년 이곳으로 옮겼다.





 [능·원·묘의 차이]

왕족들의 무덤은 묻히는 사람의 신분에따라 능,원,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능(陵)은 통상 제왕(帝王)과 황후(妃),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또는 왕의 사친(私親)의 무덤을 말하며, 그 외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과 같이 묘(墓)라 불립니다. 무인석은 왕권을 상징하므로 원칙적으로 능에만 조성할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 신분이 격상(추존)또는 격하(폐위)된 경우가 있어 과거와 현재의 명칭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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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문화에서 발간한 [조선 왕릉 답사 수첩]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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