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영월 청령포

여객전무 2010. 11. 8. 10:58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을진대 영월에서 단종의 어소가 있는 청령포와 차량으로 5분거리에 있는 장릉을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한 대쯤 운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마터면 열차시간을 맞춘다고 장릉만 보고 돌아올 뻔했다.


역전식당에서 다슬기 해장국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당도한 역에서 직원으로부터 영월에 왔으면 적어도 청령포는 보고 가야한다는 말에 곧 도착할 상행열차를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청령포를 돌아보고 터미널로 가서 버스로 제천으로 이동해 열차를 이용, 청량리로 돌아올 심산이었다. 안동에서 올라오는 열차가 있어서 제천에는 영월보다 더 자주 상행열차가 있기 때문이다.

 

 

 

동강을 건너는 뱃전에서 나와 강물은 수평이 된다. 손을 뻗으면 닿으련만 시릴 만큼 맑고 투명한 강물에 차마 손을 넣지 못하고 작은 물고기들의 몸놀림을 지켜볼 뿐이다. 푸르고 시린 물이 굽이쳐 감아 흐르는 ‘淸冷浦’를 왜 ‘청랭포’라 읽지 않고 ‘청령포’라 하는 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청령포 동쪽에 위치한 망향탑에서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 아래 바닥까지 들여다보이는 푸른 강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칼날 같은 바위산과 푸르고 깊은 강물로 둘러싸인 이곳에 어린 왕을 가두어 놓지 않았더라도 이 좁은 산하 어디라도 오래 숨을 곳은 없었을 터인데 권력의 가혹함이 서운할 따름이다.

 

자신을 낳고 산후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12세 되던 해에 돌아가신 부왕 때문에 가뜩이나 외로웠을 10대 소년은 노산군으로 강등된 채 이곳에서 한양을 그리워하며 지금에 와서 ‘망향탑’이라 이름 붙인 돌탑을 쌓았다. 어쩌면 다시 왕위에 오르지 않더라도 젊음을 누리며 살아보고 싶었을 단종을 앞세운 정치세력이 그를 죽음으로 몰았을지 모른다.

 

단종 어소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관람객 사이에 영월로 오던 열차 안에서 보았던 꼬마들이 있다. 소년 단종은 이곳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을 느꼈을 테지만 가을날 주말의 이곳은 꽤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단종이 걸터앉아 눈물을 흘렸다는 오백오십살이 넘은 관음송 주변을 노부부가 손자를 태운 유모차를 밀며 돌아보는 모습이 여유롭다.


장릉과 사릉을 하나로 합치지 못한다면 단종이 궁궐이 있는 서쪽을 바라보곤 했다는 노산대와 정순왕후가 영월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곤 했다는 낙산 동망봉을 연유 삼아 각 지자체가 자매결연이라도 맺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위대한 제왕 세종의 등에 업혀 다녔던 귀여운 손자 단종은 강원도 산골에서 폐서인이 되어 죽음을 알기엔 이른 나이에 최후를 맞았다. 그 사연을 감싸 안은 채 청령포를 둥글게 돌아 흐른 강물 위의 적막을 깨고 청량리행 열차가 동강철교를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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