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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 기자의 바깥 [15] 출판사 개마고원 장의덕 사장

여객전무 2009. 9. 29. 13:19

 

 

[최윤필 기자의 바깥] <15> 출판사 개마고원 장의덕 사장

"난 원칙주의자 아닌 널널한 출판인… 단, 돈만 보고 책 내진 않죠"
출판사 이름은 몰라도 '김대중 죽이기' '인물과 사상'으로 유명
20년전 '사회 과학 출판의 메카' 꿈꿨지만 현재 직원 4명뿐
"그래도 쳐주는 출판사 200개 안에 드니 '바깥'은 아니죠"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바깥'의 의미가 정확히 뭡니까?" 대중 사회과학서적 출판사 '개마고원'의 장의덕(51) 사장은 대뜸 자신이 바깥의 초대에 응해도 좋을 명분을 요구했다. 요컨대 컨셉트를 중시하는 출판기획자로서의 직업의식과, 못 말리는 그의 염결주의가 짙게 스민 질문이었다.

머뭇거리는 기자에게 그는 먼저 사업 업종으로서 출판이 '바깥'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출판의 전망은 밝아요. 다들 지식산업ㆍ문화산업의 시대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출판은 모든 문화 콘텐츠의 기반, 한 마디로 돈 벌어들이는 원천이죠. 게다가 개마고원은, 돈을 벌든 못 벌든 누가 알아주든 않든, 올해로 문 연 지 만 20년이 됐어요.

출판사가 국내에 약 2만 개가 있다는데 그 가운데 잊히지 않을 정도로 책을 내는 곳이 1,000곳쯤이고 대형 온ㆍ오프라인 서점들이 유의미하게 쳐주는 곳은 200개쯤 된다더군요. 최소한 그 안에는 드니까 그만하면 '바깥'은 아니죠." 잠시 뜸을 들이더니 궁지에 몰린 기자를 배려하듯 덧붙이기를 "다만 20년 전 이 일을 시작할 때 꿈꾼 게 '사회과학 출판의 메카'였는데, 현실을 보자면 '변방에서 우짖는 새' 꼴이 됐으니 그리 보면 '바깥'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변방 운운은 물론 겸사다. 개마고원을 잘 모르는 이들도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인물과 사상>시리즈나 <김대중 죽이기>, 진중권씨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등의 책 제목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개마고원은 '안티조선' 운동의 진앙지였고, 전략거점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정치, 법, 역사, 환경, 노동 분야 등 현실 정치ㆍ사회의 가장 거친 물줄기 위에 앉아 그 한복판을 휘저어왔고, 휘젓고 있는 도드라진 출판사 가운데 한 곳이다. 그 점에서도 그와 개마고원이 '바깥'은 아니다.

하지만 그와 개마고원은 출범 이래 지금껏 집요하게 추구해 온 저항적ㆍ전투적 지향과 '돈벌이로서의 출판 너머'를 막연한 미래진행형이 아닌 현재 시제로 구현해 온 드문 출판사 가운데 한 곳이라는 점에서, '바깥'이다. 그는 출판인들 사이에서도 원칙주의자로 통하는데, 그의 원칙이 도드라지게 드러난 두 가지 사례가 있다.

#1. 출판사들은 대개 신간을 내면 언론사에 책을 보낸다. 기사를 써달라는 취지다. 신간 소개 기사는 돈 들여 광고할 처지가 못 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제법 의미있는 홍보 방편이고, 적어도 책의 저자나 편집자의 노동의 가치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적 평가는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무려 15년 동안 자신의 책을 특정 신문에 보내지 않고 있다. 그가 책을 통해 그 신문의 그릇됨을 비판해온 만큼 그 신문의 위세에 편승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는 다른 일간지 한 곳을 블록리스트에 추가로 올렸고, 경우에 따라 그 목록은 늘어나기도 한다. "몇 년 전에 해당 신문사의 안면 있는 기자가 전화를 해서는 '기사 쓸 테니 이제는 책 좀 보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웃으면서 '우리 같은 출판사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거절했어요. 또 다른 곳 기자는 '우리 신문 잘 아시지 않느냐'며 이해를 구하더군요." 언론 비판하는 자리에 앉으면 누구에게도 뒤지기 싫어하는 출판인들이 허다하지만 그처럼 표나게 모난 이는, 내가 아는 한, 없다.

#2. 얼마 전 여러 필자들이 참여한 에세이집 <나만의 공간>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필진에는 홍세화, 강금실, 진중권씨 등 당시나 지금이나 어지간해서는 글 받기 힘들다는, 또 이른 바 '돈 되는' 필자들이 적지 않았다. 개마고원의 형편이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기획자와 필자들의 바람이 노골적으로 반영된 기획출판이었지만, 장 사장은 그 끄트머리에 결정적으로 소금을 뿌린다. 책 표지의 대표 필자 자리에 상대적으로 '덜 팔리는' 한 시인의 이름을 올린 것이다. "가나다 순으로 하자니 강금실씨가 제일 앞이더군요. 당시엔 정치인이었는데 책의 컨셉트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어요. 나이 순으로 해서 홍세화씨를 앞세우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왠지…. 결국 가나다순의 역순으로 했어요." 그 때문인지 어쩐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책 판매량은 기획자나 필자들의 기대에 턱없이 못 미쳤다.

그는 원칙주의자라는 '낙인'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전 근육질 소신을 가진 이들을 두려워합니다. 지독한 자기확신은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많다고 봐요. 전 널널한 출판인입니다.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가죠. 다만 원칙이라면…, 이 말은 욕 얻어먹기 딱 좋은 말인데…."

한참 머뭇거린 뒤 민망해하며 하는 말. "돈만 보고 책을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가치관이나 식견, 순간의 기분 따위에 따라 막무가내로 꼬부장해질 수도 한없이 낙낙해질 수도 있을, 저 자의성과 모호함의 느슨한 원칙 위에서 그는 원칙주의자로 불려온 것이다.

그는 78학번 국문학도다. 문청 시절이 있었고, 재능에 좌절했고, 그래도 아주 떠날 수는 없어 대학 졸업 후 몇몇 출판사를 다니다 1989년에 자본금 600만원으로 출판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 대학 운동권이었나.

"전혀 아니다. 심지어 사회 자체에 무관심했고, 참여문학에 대한 관심조차 없었다."

- 지금은 운동권인 것 같은데.

"3학년 때 '서울의 봄'을 경험했다. 학교 정문에 서 있는 탱크와 학생이 학교에 못 들어가는 상황이 충격적이었다. 졸업 후 직장 일로 당시 갓 출감한 서준식씨를 사흘 정도 쫓아다니며 인터뷰한 적이 있다. 내가 운동권이라면 늦깎이 운동권이다."

- 개마고원의 첫 책도 노동시집이던데.

"대학 동기들이 노동자 문화운동 진영에 더러 있었다. 출판사 이름도 당시 시를 쓰던 친구(정광호 한국노총 부위원장)가 지어줬다."

- 아무래도 <김대중 죽이기>(1995)가 출판사의 색깔을 선명히 한 것 같다.

"실은 그 전이다. 어느 날 일면식도 없던 강준만씨가 출판사로 원고 한 뭉치를 보내면서 '고료와 인세 안 줘도 되니 책 내고 싶으면 내고 50부만 증정본으로 달라'는 메모를 넣었더라. 당시에도 강준만씨는 '말'지의 날리던 필자였다. <김영삼 정부와 언론>이라는 제목으로 냉큼 출판한 뒤, 그 인연으로 그간 기획해뒀던 <김대중 죽이기>의 집필을 의뢰했다."

- 어쨌든 세상에 알려진 건 <김대중 죽이기> 아닌가.

"20만부 이상 나갔다. 무엇보다 사회적 반향이 컸고, 출판인으로서의 만족감도 처음 느꼈다. 형편도 한결 나아졌다. 그와의 인연이 개마고원의 색깔을 결정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2년 뒤, 당시 지식사회를 경악하게 만든 강준만 교수의 저널룩(Journalism+Book) <인물과 사상>을 내기 시작한다. 실존 인물을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모호한 인상비평이 아닌 구체적 행적과 발언을 근거로 한 강 교수의 1인 비평은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가히 혁명적이었다.

사실상 계간지처럼 출간되던 <인물과 사상>은 지령33호까지 무려 만 8년을 이어가며 국내ㆍ외 200여명의 인물에 대한 작은 평전을 남겼고, 투명한 비평과 건강한 논쟁의 열기와 새로운 관심을 촉발시켰다.

- <인물과 사상>도 꽤 잘 팔리지 않았나.

"1호는 3만부 가까이 나갔다. 뒤로 갈수록 차츰 독자가 줄어 중반 이후부터는 호당 약 1,000만원 정도씩 적자를 냈다."

- 왜 그리 됐다고 보는가.

"건강한 논쟁의 광장이고자 했다. 강준만-유시민, 고종석-김정란, 강준만-권성우, 강준만-임지현ㆍ윤평중, 강준만-진중권 등 사안별로 몇몇 의미있는 논쟁도 있었다. 하지만 상당수는 우리 비평을 외면하거나 무시했다. 인터넷 토론광장이 열리기 시작한 탓도 있을 것이다."(강 교수는 종간호의 머리말 제목을 '인터넷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이라 달고 그 형식의 축복과 병폐를 분석한 뒤 "초기의 민중적 장점에만 주목하기엔 인터넷은 너무 비대해졌고 금력과 권력의 눈독이 집중되고 있"으며 "오프라인 행위마저 규제하는 '규범 테크놀로지'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고 우려한 바 있다.)

- 경영사정은 어떤가.

"유지하는 수준이다. 정통 사회과학 서적은 매출이 오래 지속되는, 이른바 '백리스트'(back list)로 쌓이는데, 우리가 내는 책은 주로 이슈와 함께 가기 때문에 분위기가 식으면 매출도 순식간에 멈춘다. 그러다 보니 20년이 돼도 늘 이 수준이다." 개마고원은 출범 이후 7년간 1인 출판사였고 현재 식구는 그와 편집자 2명, 경리 1명, 해서 모두 4명이다.

- 경영전략을 잘못 세웠다는 얘기 아닌가.

"내가 경영 잘하는 사장은 아니다. 인정할 수 있다. 그래도 후회 없고, 앞으로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는 한국 출판산업의 구조개편은 이미 시작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출판의 미래는 낙관적이지만, 그 '출판'은 인쇄 출판뿐 아니라, 랜덤하우스나 베텔스만그룹 등이 '퍼블리싱'이라고 할 때 포괄하는 사실상의 '미디어 전반'의 의미에서다. "우리 출판계도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메이저 출판사들의 몸집 불리기가 그 맥락인데, 자연스럽게 출판계의 양극화로 이어지겠죠."그는 대형 출판그룹이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할 것이고, 좁은 영역에서 전문성으로 승부를 거는 출판사들이 나머지 시장을 두고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에게도 최근 한 메이저 출판사측에서 '돈 대줄 테니 자회사로 들어오라'는 제의가 있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버티려면 백리스트가 있어야겠기에 최근에 <청소년을 위한 세상읽기 프로젝트>라는 시리즈를 시작했어요. 청소년 사회과학 교양서 시리즈인데 번역서와 국내 저작을 섞을 생각입니다."

우리의 이 '바깥'은 경계가 흐리마리한 공간이라 애당초 밝힌 터에, 초대의 명분을 밝히라는 그의 따짐에 말려들어 그와 개마고원을 지나치게 바깥으로 몰아간 듯도 하다. 어디선가 고은광순(사회운동가)씨가 '중앙을 넓혀 변방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썼고, 그 글을 받아 고종석(본보 객원논설위원)씨가 어느 책에서 '변방을 넓혀 중앙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쓴 적이 있다.

그가 바깥이라면 그의 바깥이 개마고원처럼 튼실하게 넓은 공간이었으면 좋겠고, 바깥이 아니라면 넓혀진 안이었으면 좋겠다. 그의 원칙과 고집에 동조하든 않든, 그의 말처럼, 우리에겐 이런 출판사도 있어야 하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