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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 기자의 바깥 -[17] 최근덕 성균관장

여객전무 2009. 10. 21. 17:56

 

 

문화

[최윤필 기자의 바깥] <17> 최근덕 성균관장
"성균관도 다 죽었다고 유림들에게 욕 많이 먹었지"
2대 봉제사·여성참례… 유교도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교육조차 실용에 치우친 요즘 유교의 생활윤리 절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내가 논어를 새로 한 권 지어올 테니 여기 어디 묻어뒀다가 발굴해줄 테요?"

공자(孔子)의 고향인 중국 산둥성(山東省) 취부(曲阜)에 들러 그쪽 사람들과 대화하던 중 최근덕(76) 성균관장이 했다는 농담이다. 공자가 논어에다 '논어 읽으면 복 받는다' '공자 믿으면 천국 가고 극락 간다' 류의 현ㆍ내세 기복(祈福) 문구를 한 줄이라도 넣어뒀다면 오늘 유교 대중화나 성균관 살림에 좀 도움이 되지 않았겠냐는 의미였던 것.

모름지기 유림이란 경(經)과 법(法)의 자구(字句) 하나하나에서 권위를 찾고, 그 권위에 대한 개결한 복종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이들이고, 그들을 대표하는 자리가 성균관장이다. 최 관장의 말은 물론 농담이었고 좌중도 뒤집어졌다지만, 그의 마음까지 웃음처럼 가볍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 유학, 한국 유림이 지금 서 있는 자리는 그만큼 옹색하고 위태롭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유림회관 2층 관장실. 최 관장은 두루마기를 갖춰 입은 뒤 기자에게 자리를 권했고, 명함을 건네자마자 관향과 고향을 물었다. 피의 계통을 두고 몇 마디 덕담이 건너왔고, 고집으로 명이 난 지리산 동남쪽 몇몇 마을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 전이(轉移)가 불편하기도 해서 대뜸 '유교는 교(敎)냐 도(道)냐 학(學)이냐'며 별렀던 질문을 꺼냈는데 최 관장의 대답은 서슴없었다. "그게 그거야. 신라시대에는 술(術)이라고도 했어. 유술, 유술 그랬거든."

그는 유교를 생활윤리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중국 한 무제(BC 156~87)가 국교(國敎)로 정하면서 정치이념화하지만 근본은 생활윤리야. 국교라는 말도 엄밀히 말하면 국학이지. 어쨌거나 중국 문화가 우리를 비롯한 동양 문화의 주맥이고, 중심은 당연히 유교고…." 그는 유교가 종교냐는 상식적 의문에 대해 엄연한 종교라고 말했다. "종교라는 게 뭐야? '으뜸(宗)되는 가르침(敎)'이잖아. '내세관이 있어야 한다' '절대자가 있어야 한다' 따위를 종교냐 아니냐를 판별하는 기준처럼 따지는 건 서양 종교들이 그들의 종교관을 갖고 동양 정신문화에 적용하려는 거야. 일본 문부성에서 세계 석학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종교의 정의가 무려 170여 가지나 나왔다잖아." 덧붙이기를 "갑오경장 직후에 고종이 유시를 내려. 요지는 '우리 종교는 유교다. 교조는 공자고, 교주는 짐과 태자니라.' 서양 종교의 기세, 곧 사기(邪氣)를 꺾고 원기(元氣)를 북돋우자는 취지였지."

유교가 위기냐는 데에는 이론(異論)이 있을 테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쓴 김경일 상명대 중문과 교수처럼, 외려 그 기세가 너무 승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비판에 동의하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성 불평등, 가부장주의의 균열을 두고 '생활윤리의 위기'라 할 이는 드물 것이다. 최 관장이 염려하는 위기란 우선 성균관의 위기이고, 향교 조직의 위기이고, 유림의 위기다.

_ 어떤 상황인가.

"일단 사람이 없다. 지방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인데 서울은 사람이 안 모인다. 청년유도회도 있지만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 유림 노령화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다."

_ 타 종교처럼 포교 등 대중사업은 안 하시나.

"전국 234개 향교마다 교육시설이 있다. 거기서 초ㆍ중등생 예절교육도 하고, 주부유도회도 대중 활동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안 온다. 영어학원 다니기 바쁘고 수능ㆍ내신 챙기는 게 급하다는데 어느 부모가 아이를 향교에 보내겠나. 심지어 유림들조차 손자손녀 향교 보내기 어렵다고들 하는 실정이다."

인간은 적자지심(赤者之心ㆍ 벌거벗은 순수한 마음)으로 태어나지만 욕심의 때가 묻게 된다는 게 유교의 인간관이다, 교육은 그 때를 벗겨주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교육조차 정신이 아닌 기술, 도덕이 아닌 실용으로 치우쳐 있다, 이런 때일수록 유교의 생활윤리가 절실하다며 최관장은 안타까워했다. 요컨대 그가 말한 위기에는 생활윤리로서의 유교의 위기도 포함돼 있었던 셈이다.

_ 유(儒)의 원리란 도리로 자기 몸을 적셔 그 부드러움(柔)으로 이웃에게 스미듯(濡) 교화하는 것이라 들었다. 그래서 유(儒)는 반드시 필요한(需) 사람(人)이라던데, 그게 위기라면 결국 자기든 이웃이든 제대로 적시지 못했다는 의미 아닌가.

"유학의 근본 정신은 인(仁)이지만, 그 철학적 기반은 역(易)이다. 대전제가 '바꿈'이고, 변화의 철학이라는 의미다. 선한 인성처럼 불변의 대경대법(大經大法)은 있지만 그 밖의 주의주장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 유학(더 엄밀히 말하면 유림)은 그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했고, 오히려 작은 변화의 시도에도 저항한다. 안타깝다."

서당교육 마지막 세대인 최 관장은 1955년 성균관대에 입학하던 때부터 성균관 일에 간여했고, 십수 년 전부터 유교 현대화를 위해 목청을 높여온 이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음력 2월과 8월 초정일(1~10일 중 천간이 '丁'인 날) 열리던 석전대제를 공자 기일(음 4월11일)과 탄강일(음 8월 27일)로 바꾼 거나, 문묘 제례에 여성의 참례를 허용한 일, 제사도 4대 봉제사가 아니라 2대만 올리자고 제안한 일, 향교의 실무 임원인 장의(掌議)에 여성 참정권을 보장한 일 등 적지 않다. "유림들이 얼마나 나를 욕하는지 몰라. 심지어 '성균관도 다 죽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어. 한국 유학이 바뀌어야 할 것들은 여전히 많은데, 가장 시급한 것은 유림의 마인드가 바뀌는 거야."

최 관장은 유학에 드리워진 그늘들, 이를테면 남존여비 반상차별 등이 유학의 폐단인 양 인식되는 것도 그릇됐다고 말했다. "양반 특권의식이나 군자ㆍ소인 차별 등은 유교에서 금하는 폐습이야. 공자시대에 어디 그런 게 있어? 조선 후기로 오면서 봉건 전통의 역기능이 침윤된 거지. 성차별도 그래. 여자를 제사에서 배제하는 건 일부, 우리의 경우 우암 송시열 선생의 노론 계열에서 지금도 그러지만, 주자가례를 보면 제사의 초헌은 종손, 아헌은 종부, 종헌은 집안의 어른이 하도록 돼 있어. 혼인을 해도 제 성을 유지하는 드문 나라야."

그는 다만 유교의 사랑은 차별적 사랑이라는 데 대해서는 인정했다. "자비나 박애랑 달리 유교의 사랑은 '친친애인(親親愛人)'이야.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하고 그 사랑을 남에게 넓혀가자는 거지. 그게 현실적이고 솔직한 거 아닌가? 어떻게 내 혈육이랑 남을 똑 같이 사랑해? 먼저 내 혈육을 사랑하고 그 간절한 마음을 이웃으로 넓히니까 더 큰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지."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G20 개최를 두고 변방에서 중심국으로 부상했다고 한 말을 인용하며 웃긴 얘기라고 했다. "단군성조 시절부터 이화세계를 표방했고 중심이었는데 그게 뭔 소리냐, 이태리 볼로냐 대학이 11세기에 만들어졌다는데, 우리는 372년에 대학(고구려 태학)을 세우지 않았느냐, 문화가 아니라 돈 몇 푼 많고 적고를 근거로 중심 변방 운운하는 것은 웃긴 얘기지."

민족(우월)주의와 친친애인의 논리는 어떻게 양립하냐고 묻자 그는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이야기했다. "배서주의 배금주의가 얼마나 기세등등해. 요즘은 시골을 가도 누가 돈 잘 번다면 그 집 아들 잘 뒀다고 칭찬해. 그러니 우리의 정신세계를 강조하고 앞세워야지."

최 관장은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출범한 국제유학연합회(International Confucians Association)의 초대 이사장을 맡았는데, 그때부터 이미 중국은 공자와 유교 통치이념을 떠받드는 데 적극적이었다고 말했다. "출범식 다음날 장쯔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이 나를 불러. 갔더니, 내 손을 잡으면서 산업화하면서 가정과 직장 사회 윤리가 파괴되고 있다며 우리더러 도와달라더군. 공부자 탄강 2550주년(1999년) 행사를 베이징 인민대회당 상무회의실에서 했는데 당시 돈으로 800만 위엔을 주더군."

중국 정부는 2004년 11월 서울에 공자아카데미를 연 이래 공자학원을 81개국에 324개나 설립했고, 최근에는 공자 탄신일을 '국제 스승의 날'로 지정하자는 제안까지 국제사회에 내놓고 있다. 지난달 28일 취푸에서 열린 석전대제에는 중국 정부 고위인사 등 1,0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이었고, 앞서 열린 국제유학토론회에는 자칭린(賈慶林)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당서열 4위)이 참석해 "유학을 깊이 연구해 중국의 현실적 문제 해결에 적극 활용하자"고 강조했다고 한다.

장쩌민의 덕치론이나 후진타오(胡錦濤)의 이인위본(以人爲本ㆍ국민을 근본으로 삼음)도 유가사상에 뿌리를 댄 통치이념이라고 한다. 불과 40년 전에 공자 비석조차 자르던(문화대혁명) 중국이 한 무제 시절로 회귀한 듯 공자 받들기에 낮밤이 없다.

제례나 전례 격식의 전통이 끊긴 중국은 중앙방송 CCTV에서 성균관 문묘 석전대제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 한 달 넘게 머물며 제주 담그기부터 제수 장만까지 모든 절차를 찍어가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우리 측 유림 대표단이 베이징 국자감에 가서 시연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유학에 드리운 그늘이 더 짙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달 말 석전대제에는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이 초헌관으로 나섰다. "달포 전 세계종교문화축제때 유교 제관들의 옷을 보더니 장관이 입어보고 싶더다군. 해서 그럼 초헌관 하라고 했더니 그러겠대. 그런데 그 사람, 다르더군. 잠깐 와서 해보더니 이걸 원형 복원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 관광상품화하자는 거야. 며칠 뒤에 문화재청과 관련기관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더군." 정신과 문화에 상품논리를 들이대는 것도, 번갯불에 콩 볶듯 밀어붙이는 것도 삐뚜름하게 보자면 최 관장이 말한 배금주의에 뿌리를 둔 발상이겠지만, 최 관장은 그게 어디냐는 생각인 듯했다.